2023.11.26. 주일오후설교(요한계시록 3:14-22)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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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3:14–22 NKRV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서론
주일 오후 예배 (11/26일)에 나오신 성도님들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저는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자” (19절) 이라는 제목으로 같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오늘 말씀은 요한계시록 말씀인데요.
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전한 것 때문에 /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을때/ 환상을 보고 기록한 말씀이죠.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소아시아 일곱 교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특별히 오늘 읽은 말씀 (3장 14-22절)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에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1) 에베소교회- 처음 사랑을 버린 교회라고 알고 있는데요
2) 라오디게아 교회 - 사랑이 식어버린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 다시 사랑하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통해서,
1)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통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사랑이 “한번의 사랑”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랑, 영원한 사랑이라는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보고/
3)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들 (불로 연단한 금, 흰옷, 안약)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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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 오늘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예수님의 편지”를 통하여,
1. 14절을 보시면, 삼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요.
요한계시록 3:14 (NKRV)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을 자신을 “1)아멘이시요, 2)충성되고 참된 증인, 3)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우리가 기도할 때에, 아멘이라는 말하죠.
우리가 기도한 내용이 이루어 지기를 원합니다. 라는 뜻에서 아멘하죠.
여기서, 예수님 = 아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동안에,
아버지의 뜻 을 드러내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ex) 예를 들어서/ 구약시대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는데/
유대인들이 이 율법을 문자적으로 해석을 해버리니까/
예수님께서 오셔서 산상수훈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완전히 드러내셨습니다.
안식일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메시아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절기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안식일이며/ 제사며/ 절기며/ 율법이며/ 이런 모든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셨습니다.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뜻은 =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데 /
아무도 이뜻을 이룬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그 뜻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2)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이런의미에서 예수님 = 아멘이십니다.
2) 그리고, 예수님 = 충성되고 참된 증인(witness, 목격자)이라고 하는데요.
이 말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증인”이 되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8 NKRV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에게 “내 증인이 되라”라고 말씀하셨죠.
그런데, 여기서는 예수님 자신이 “증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의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를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아버지의 증인이 됩니다.
2-1) 실제로/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아버지의 증인으로 일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 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 전에/
제자들 (베드로, 도마, 빌립)과 대화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십자가에 대해서 이해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내가 이제 아버지께로 간다고 이야기 하니니까/
빌립이
요한복음 14:8–9 (NKRV)
8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이 말은 예수님만이 아버지를 안다는 것 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수 많은 이적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고, 수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이렇게 함으로써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과 아버지가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죠.
ex)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고쳐주셨는데/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일을 한다고 가 났습니다.
완전히 안식일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었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박해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5:17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이것은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능력을 드러냄으로써, 아버지의 증인으로 일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결국 아버지를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신실한 아버지의 증인이 되는 것이죠.
2-2) 그리고 /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를 드러내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버지에 대하여 충성되고 진실한 증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에 대하여 증인이시고 / (요14)
성령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인이시고/ (요15)
우리도 그 성령으로 예수님에 대하여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
1,2) 자 그렇다면/ 여기서 /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시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아버지를 증언하시는 이유?
그것은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기 위해서 입니다.
고린도후서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것을 새로운 창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14절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3:14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이 모든 피조물의 창조자일 뿐 아니라/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는 분이라는 것이죠.
새로운 피조물의 본질 =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것을 모형으로 보여주신 것이
구약 시대 - 성막을 만들고/ 성전을 만든 이유?
바로 우리가 예수님의 거처가 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기 위해서,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 것?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위해 죽고 부활해야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 죄를 사하지 않고는 우리와 함께 할 수 없어요.
그만큼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고 서라도)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고 싶어했습니다.
오늘 14절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이렇게 자신을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
결국 무엇입니까? 예수님 자신의 몸을 바쳐 얻어낸 예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이만큼/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요/ 우리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 온전히 이해하느냐?
예수님의 사랑에 관심이 있느냐?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어요.
15절에서 말하고 있는데요.
요한계시록 3:15 (NKRV)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오늘 본문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영적 상태를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고 않다고 말합니다.
ex) 이러한 표현을 언제쓰죠?
ex) 남자와 여자가 사귀는데,
사귀는 건지 안사귀는 것지 모를때에 -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고 하잖아요.
무슨말이죠? -
"예수를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 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아버지에 대하여 증언하고 / 아버지의 뜻을 드러내고/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는데
정작 우리는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 입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믿는 것 같기도 하고
예배당에 오면 예수를 믿는 것 같은데/ 또 밖에 나가서는 세상 사람들하고 똑같이 사는 것이죠.
2-2) 그럼, 이렇게 예수를 믿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빠져있나?
세상에서 만족을 얻는다 것 입니다.
그리고 17절을 보면,
요한계시록 3:17 (NKRV)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교회 - 세상의 것들로 만족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로새서에서 등장하는 “에바브라”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 부유한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17절)
요한계시록 3:17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실제로 역사가들은 - 라오디게아 지역이 양모 산업, 의학 산업, 금융업이 발달한 부유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ex) 주전 133년, 로마가 라오디게아 지역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동서남북으로 도로를 건설하였고,
사법,행정, 상업 중심지로 말들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black wool이 많이 생산되어서, 의류 산업이 발달하였고, 눈에 바르는 연고를 발명하여서, 의료 산업도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교회 안에 - 은행에 다니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회사의 사장님도 있었을 것이고, 의사, 약사도 있었을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둥 마는 둥 했다는 것입니다.
왜? 부족한 것이 없기 때문에요.
(적용) 사실, 이런 모습들이 현대 한국 교회에 팽배하죠.
70년대 80년대 한국 교회가 급속히 팽창할 때,
지금과 비교해보면, 그때는 많이 가난했었죠.
저도 흑백 티비를 본 기억이 있고, 집에 자동 차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교회는 사람들도 넘쳐났습니다.
그런데, 2023년 지금은 갈수록 예수 믿는 사람들이 줄어듭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를 안 믿어도, 먹고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이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에 별로 예수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3. 이렇게 예수를 믿는 둥 마는 둥 하는 사람을? 예수님이 좋아하겠습니까?
당연이 싫어하겠죠/
그것이 16절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3:16 (NKRV)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요?
라오디게아 근처에는 “히에라볼리”와 “골로새”가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4 장)
히에라볼리 - 뜨거운 탄산 칼슘을 함유한한 온천수가 나왔는데요.
이 온천수는 사람들에게 여러가지 유익을 줍니다.
(피부병, 근육통 관절통에도 효과가 있고, 해독작용도 한다고 합니다. )
그래서 연세드신 분 (퇴행성 관절염)이 온천을 가는 분들이 있는데, 실제로 퇴행성 관절염 통증완하에 온천이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골로새 - 루커스 계곡에서 나오는 시원한 물로 사람들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차갑던지 뜨겁던지” 하라는 말은 (15절)
예수를 믿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
늘 예수 안에 거하면서/ 예수님의 기쁨이 되라는 말 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고 말하는 것은?
이렇게 예수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아니게 살면은/
예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거죠.
(적용) 실제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둥 마는둥 하면은 /
세상 사람들한테도 손가락질 당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욕하는 것이죠.
예수 믿으면 예수 믿는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데/
말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사는 것은 세상 사람들하고 똑같이 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4.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우리의 부족한 것들을 알아야 합니다.
17절 보시면, 우리의 실상을 이야기 하는데요.
3-2)이러한 모습들을 예수님이 뭐라고 하느냐?
요한계시록 3:17 (NKRV)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요한계시록 3:17 (DKV)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풍족해서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나 너는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사람임을 알지 못한다.
우리의 실상은 -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사람들이라는 것 입니다.
ex)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를 보십시요.
누가복음 15:12–16 NKRV
12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14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15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16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탕자 - 세상에 눈이 멀어가지고/ 아버지 재산 가지고 아버지를 떠나 사니까?
어떻게 살았습니까?
비참하고 불쌍하게 살지 않았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귀하고 존귀한 보배로운 예수를 떠나 사니까?
자기들은 세상에서 만족을 얻고 있으니?
실상은 “비참한 사람/ 불쌍한 사람/ 가난한 사람/ 눈 먼 사람/ 벌거벗은 사람”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ex) 왕과 결혼한 가난한 여인을 생각해 보세요.
왕과 함께 왕비로 있을때에는 존귀한 왕비가 되지만/
왕을 떠나 살면 - 비참하고 가난한 여인이 되는 것이죠.
우리가 예수를 떠나 살면 - 이렇게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
5.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예수님과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가까이
18절 보시면,
요한계시록 3:18 (NKRV)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여기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3가지를 사라고 말씀합니다.
1)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진짜 부자가 되라고 하시고/
2)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라고 하시고/
3)안약을 사서 세상 사람들이 불 수 없는 것들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 가지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물질적으로 만족을 누리는 것들과는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1)실제로 -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 부요하여 금이 많았습니다.
2)그리고 양모 산업이 발달하여서 좋은 옷들을 입고 다녔습니다.
3)안약 산업이 발달하여서 눈에 질병이 있는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엇고, 눈에 보이는 세상을 더 잘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야기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금/흰 옷/ 안약은 모두 예수님이 가지고 있는 것들인데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은혜로 주시는 것들입니다.
요한계시록 4:4 (NKRV)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사도 요한이 환상을 보는데/ 24 장로들을 봅니다.
이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있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흰옷을 입혀주신 것이고, 머리에 씌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크신 은혜로, 우리에게 믿음주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하셨서요.
그런데 예수님 가까이 하지 않으니까?
전혀 예수 믿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반드시 세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불로 연단한 금 -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베드로전서 1:7 NKRV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4:12–13 NKRV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17 NKRV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예수 믿는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심판을 먼저 받는다라고 하고 있어요.
말씀으로 먼저 우리가 깨끗해 지는 과정을 겪는다라는 것 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 예수 안 믿는 사람하고 차이가 없어요.
말씀으로 우리가 우리를 달아보고/ 우리의 부족함을 알고/ 매일 깨끗해져야합니다.
우리의 욕심을 빼어 내어야 합니다.
이 과정이 힘들기 때문에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에 “쓴 나물”을 먹었습니다.
출애굽기 12:8 “8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2. 흰옷 - 우리에게서 선한 행실이 나오며
요한계시록 19:8 “8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성도는 반드시 선한 행실이 밖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빛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영적으로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주님 보고 살고,
-세상 사람들이 읽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씀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ex) 엠마오로 가는 예수님의 두 제자
저희 눈이 가리워져서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면서도 예수님이신 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말씀도 깨닫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에 이것이 없었어요.
1)불로 연단한 금 -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
2)흰옷 - 선한 행실도 없었고/
3)주님을 보지 못했고, 말씀을 깨닫지도 못했다는 것
그래서/ 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3가지를 사라고 말씀합니다.
1)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진짜 부자가 되라고 하시고/
2)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라고 하시고/
3)안약을 사서 세상 사람들이 불 수 없는 것들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적용) 우리가 이런 것들이 있습니까?
1)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에 관심이 있으세요?
2)날마다 선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에 관심이 있으세요?
3)날마다 말씀을 사모하면서 사는것에 관심이 있으세요?
6. 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게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항상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속에서 살아야 해요.
19-20절보시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열심을 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3:19–20 (NKRV)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열심을 내라는 말을 오해하면 안 되겠습니다.
이 말은 나 자신을 위해서 열심을 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요즘 말로 하면 - “나와 더 사랑의 관계를 가지자” 라는 말 입니다.
ex) 단대오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밥 (닭갈비)을 아내랑 먹는데
옆 테이블에서 어떤 분들이 교회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본인은 교회를 다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교회 다니는 친적이 있는지, 지인이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교회에 너무 열심을 내면 안된다. 적당히 해야지" 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분은 예수 믿는 것을 = 종교생활로 이해하고 있는 듯해요.
여기서, 예수님이 열심을 내라는 말은 “주님께서 우리와 더 사랑의 교제를 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20절 말씀이죠
요한계시록 3:20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 항상 주님과 얼마나 사랑의 교제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내가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며 내가 주님과 사랑의 관계 속에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1) 종교생활 - 내가 필요할 때만 신을 찾는 것입니다.
신이 나를 위해서 (for me) 있는 것이죠.
그래서 내가 필요할 때에, 내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서
신에게 애를 써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도 좀 들이고 해서, 신에게 내가 필요한 것을 받아내는 것이죠.
이것을 종교생활을 하죠.
그래서 종교생활은 내가 필요할 때만 절이든 교회든 가서 애를 쓰면 되죠.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면/ 적당히 예수를 믿을 수 있을 것 입니다.
VS 그런데 우리가 항상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속에 있으면?
-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for the Lord)있는 것이죠.
나의 유익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죠.
바울이 뭐라고 하였습니까?
로마서 14:7–8 (NKRV)
7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정말 원하시는 모습?
우리는 내가 중심이 되는 종교생활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이 중심이 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6-1. 신앙생활의 핵심은 주님과 함께 교제하는 것
- 20-21절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20–21 NKRV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여기 보시면, 분명히 라오디게아 교회는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20절에서, 그런데 예수님은 문 밖에 서 계십니다.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까? 주님과 교제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죠.
이것은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이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두지 않고, 밖으로 밀어낸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을 믿는 것은 /
항상 내 마음에 예수님이 있는 것이죠.
(적용) 언제, 어디서나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죠.
힘들때나 외로울때나 기쁠때나 언제나 주님과 함께 사는 것
ex) 보통 사람들은 삶이 만족스러울 때에는 예수님을 잘 찾지 않는 것 같아요.
어떤 교회 목사님이 새벽에 성도님들이 나오면 겁이 난다고 합니다.
저 집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요
우리가 힘들때만 주님께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매일 주님과 대화하고, 주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는 것을 예수님은 원하십니다.
그리고/ 사랑의 관계 속에서/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우리도 같이 가는 것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기는 자에네 내 보좌에 앉게 하여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3:21 NKRV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예수님은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겼습니다.
요한복음 16:33 NKRV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이 십자가로 이긴 것 처럼, 우리도 십자가로 세상을 이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라는 것이죠.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편지를 왜 보냈습니까?
1)세상의 것들로 만족하고/ 예수님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2) 그래서 믿는 둥 마는 둥/ 예수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고 그랬죠.
3) 세상에 어떤 유익도 주지 못했습니다.
정말 이 시대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리를 우리 주님은 여전히 사랑할까요?
네 우리가 아무리 못나도 / 우리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여러분들 각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부모님을 사랑하고, 자녀을 사랑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특별히,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정말 사랑하죠?
얼마만큼 사랑? 자신의 몸 보다 더 사랑합니다.
자녀들이 여러가지 결점이 많아도, 부모님들은 여전히 그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만을 바라고 있어도 /
부모님들은 자녀들에게 섭섭하게 생각할 수 는 있어도, 결코 자녀들 사랑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어도/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 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사랑도 이러한데?
하물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자신의 피로 사신 우리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은 어떠할까요?
even though 아무리 우리가 부족해도, 아무리 우리가 예수님에게 마음을 주지 않아도/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13:1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 사랑을 이용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주님이 다 받아주신다고. 이용하지 말고.
이제 주님의 음성에 귀를 귀울이는 저희들 됩시다.
요한계시록 3:22 NKRV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런 주님을 더 알기를 원하고/ 더 사랑하는 저희들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찬송가 32장 “만유의 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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